(2022) Bodies of Water_bookclub.pdf
뒤엉킨 마음을 무작위적으로 놓인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 골라 붙이면서, 해소되지 않은 채 억눌렸던 욕망의 편린들과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심연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것은 표출하지 못했거나 알아차리지 못한 자아의 원초적인 형상들 사이에서 헤매던 혼란스러움과 억압감, 나아가 들끓는 어떤 마음이었다. 동시에 그 마음들 사이에는 예상치 못하게 드리우는 폭력 또는 대형참사의 서사들로부터 주변인/목격자의 위치에 있던 내 안에 언제부터인가 자리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구멍이 있음을 발견했다. 몸 한켠에 생긴 작은 점이 내 살을 서서히 파고들어 구멍이 된 듯했다. 아물지 않는 구멍에는 진물이 흐르듯 늘 물기가 서렸다.
구멍을 향해 바로 다가가 마주하기에는 여전히 발길이 쉬이 닿지 않았다. 나선형을 그리듯 주위를 맴돌며 나아갔다. 가다 보니 내게만 그런 구멍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타자들에게도 각자만의 서럽게 아린 빈 공간과 그 사이에 스민 물기들이 잔재했다. 나의 슬픔을 바라보고자 했던 여정에서 타자의 슬픔을 마주했다. 같은 성분의 눈물 사이에서 각 서사들이 이루는 접점들과 차이들은, 내 안의 구멍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예상했던 바와는 다른 형태의 지형도를 그렸다. 그 지형도는 신체라는 물질에 스민 종, 젠더, 나이, 계급 등 세속적 차이들이 이루는 다중적인 관계망들을 횡단하며 세상과 연루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작업은 “수공유지(hydrocommons)를 이루는 수역들(bodies of water)로서 우리는 모두 같고 다르다”는 명제에 도달했다. ‘수공유지’는 『수역들』의 저자 아스트리다 네이마네스(Astrida Neimanis)가 제안한 용어로, 현재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물질로서 ‘우리’는 물들이 이루는 창발적인 변형-털, 살, 세포, 에너지 등-의 과정 내에서 공생해왔음을 보여준다. 수공유지의 안-사이를 횡단하는 것은 물(matter, 物)들의 세속적인 관계맺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 확장된 ‘우리’의 형상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물의 일부로서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몸’, 육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신체 끄트머리의 감각부터 하나하나 깨워본다. 조금이나마 확장된 범위로서 ‘우리’의 태곳적을 상상하며 공생에 관한 신화를 그려나간다. 이는 곧 언어 너머의 물질-기호들을 찾아나서는 행위이자 ‘우리’의 다종다양함을 더 생생하게 감각하는 과정이다.
수역들로서 ‘우리’를 감각하기 위한 체현적 실뜨기를 이어간다. 실존하는 타자들-물들, 예술가들, 스코비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공생자들-의 이야기를 청해 듣고자 했다. 예술가들과 함께 물을 나눠마시며 각자가 경험해온 물에 관한 이야기, 나아가 하나의 수역으로서 세상과 연루되는 수행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콤부차를 만들 때 쓰이는 종균인 스코비(Symbiotic Culture Of Bacteria and Yeast)로부터 물컹하고 단단한 몸체를 형성하는 다공성의 점막, 그 사이로 스민 신내음, 산과 당의 물기를 감각했다. 찻잎과 당분과 종균이 들어간 25도의 물을 향유하며 어느 시기가 되면 형태를 드러내고, 생의 조건이 사라지면 증식을 중단하는 세속적인 공생과 창발의 과정을 함께 했다. 틈틈이 숲을 거닐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자연물을 수집해 손바닥 크기의 주머니 우주를 형성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우주를 다시 숲속에 놓기를 반복하며 모든 것들이 한 몸에서 우글거렸을 태곳적부터 엔트로피를 향해 흩어져가는 현재의 두터운 생들의 조합을 감각했다.